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쓰라-태프트 밀약 (문단 편집) === 단순한 사적 대화인가? === 밀약 당시 태프트는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관점에 공감을 표시하였고,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하면서도 무력을 통한 조선의 외교권 박탈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자신의 이 의견에 대통령인 루스벨트 또한 동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루스벨트는 그에게 제출된 '각서'에 대한 7월 31일의 회신에서, 그에게 "자네가 가쓰라 경과 나눈 대화는 모든 부분에 있어 전적으로 옳은 얘기네. 내가 자네가 했던 모든 말에 동의한다고 가쓰라에게도 말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Your conversation with Count Katsura ''(sic)'' absolutely correct in every respect. Wish ''(sic)'' you would state to Katsura that I confirm every word you said." [[http://www.icasinc.org/history/katsura.html|출처]]] 라고 말했다. 태프트의 말 대로였다. 태프트와 루스벨트는 일찍이 1890년경에 친구가 되었고, 1904년 1월, 태프트가 전쟁부 장관이 된 이래로 루스벨트는 육군 관리는 자신이 맡고 태프트에게는 주로 [[파나마 운하]], 필리핀 문제 등의 '해결사' 역할을 맡겼다. 루스벨트 집권 기간 내내 둘은 친밀한 관계를 계속 이어갔고, 루스벨트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태프트는 그의 후임자로 지명되었으며, 루스벨트의 지원에 힘입어 대통령 자리에도 올랐다. 비록 그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나서는 관계가 악화되긴 했으나, 밀약 당시 태프트의 의견은 곧 미 대통령의 의견이자 미국의 의견이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태프트와 루스벨트 사이에는 충분한 교감이 있었다. 한편 가쓰라는 대리인 수준도 아니고 그냥 '일본 제국 총리'의 신분인 상태에서 회담에 임했다. 즉 이 두 고관의 위치를 볼 때 이미 평범한 외교관 수준이라고 보기 힘들며, 이 둘의 만남은 사실상 비밀 정상 회담이나 마찬가지인 무게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위의 개요에서도 짧게 다룬 것처럼, 조약이었을 때나 법적 효력을 갖지 사실은 두 외교관의 회담을 기록한 각서에 불과한 만큼 외교 정책상의 효력은 전혀 없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외교에서 밀약이라고 해서 효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역사상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몰래 국가간의 관계를 정하고 그것을 지킨 예는 무수히 많았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나치 독일]]과 [[소련]]이 [[독소 불가침조약|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이나, [[북한]]이 [[중국]], 소련과 군사 동맹을 맺은 것 등 모두 그 당시에는 몰래 맺고도 효력이 존재하던 것이었다. 또한 오늘날에도 [[주요 7개국 정상회담|비공식적 자리]]에서 국제 정세를 정하는 일들은 여전히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